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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의료재단은 국가유공자 보훈 사업을 통해 독립운동 정신 계승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사회공헌 국가유공자 보훈 사업 유족과의 만남

독립유공자 유족지원

나는 다시 태어나도 나라를 위해 살 것이오 – 승병일 애국지사

등록일
2019.07.16
조회수
3,385

 

일제 치하 엄혹했던 1942년, 열여섯 살 중학생 일곱 명이 피로 맹세한다는 뜻을 모아 항일단체 ‘혈맹단’을 조직했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비밀결사 조직을 결심하게 된 것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꿈꿨기 때문입니다.

 

그 중 혈맹단의 부단장이었던 승병일 지사는 어릴 때부터 큰아버지께 독립운동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승병일 지사의 큰 아버지는 한국 독립군 3대 대첩 중 하나인 청산리전투에 참전하신 독립군 검독 승준현 선생이며, 연일 승씨(延日承氏) 19인이 독립유공자입니다.

 

임시 정부와 독립군의 활약상을 마치 옛날 이야기처럼 들으며 자란 승 지사는 임시정부와 독립을 자연스레 마음 깊이 새겼습니다. 하지만 독립운동가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승 지사는 학교를 다니며 일본 경찰과 친일 교사들은 늘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며 크고 작은 불이익에 시달렸습니다.

 

오산학교 동급생 일곱 명이 결사한 혈맹단은 매일 이른 아침 함께 산을 오르며 체력단련을 했고, 단도를 구해 투검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금지 도서들인 『운현궁의 봄』, 『금강산 기행』, 『상록수』 등을 어렵게 구해 읽고, 애국애족 정신과 독립을 맞았을 때 해야 할 일 등을 토론했습니다. 그렇게 항일 선전과 일본인 교장 배척운동 등을 전개하다 1945년 일제에게 혈맹단 활동이 발각돼 신의주 형무소에 갇혀 모진 고문을 받으며 재판을 기다리던 중 조국의 독립을 맞이했습니다.

 

광복 후 이틀 뒤인 1945년 8월 17일, 젊은 일본인 검사는 “조선이 별도로 독립한다고 합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는 말을 남기고 형무소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신의주 거리에는 ‘항일혁명가’들을 환영하는 플랜카드가 걸려있었고 만세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몇 개월간 옥살이를 해서 온 얼굴에 털은 덥수룩했고, 몸도 쇠약해져 있던 상태라 몽롱하게 의식조차 뚜렷하지 않았음에도 승 지사는 출소하던 그 날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 모진 고문을 받았던 그의 건강을 염려하자 “오래 전 일이라 이제 괜찮다”는 승 지사. “나이가 들어 건강이 예전만 못한 것은 자연의 섭리다. 이를 부정하거나 슬퍼할 필요는 없다”며 고개를 젓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나라를 잃은 슬픔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며 이제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로서 할 일은 바로 독립운동의 숭고한 역사를 후손들에게 전하는 것뿐이라며 소회를 전했습니다.

  

진료받는 모습

 



자생의료재단 신준식 명예이사장 SAY 


“저 또한 독립운동가문의 후손으로서 독립유공자이신 애국지사 세 분을 직접 모실 수 있게 돼 영광입니다. 

아버지의 친구분을 모시듯 진심을 다해 진료하겠습니다.” 

 


 

자생의료재단

애국지사 승병일 운동계열 : 학생운동 포상정보 : 2000년 대통령표창 공적개요 : 1943. 3월 평북 정주의 오산중학교에 재학중 학우 선우전과 함께 혈맹단을 조직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서적을 윤독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로의 합류를 모색하는 등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3월여의 옥고를 치르고 광복으로 인해 출옥함 / 자생의료재단∙자생한방병원은 독립유공자와 유족 의료 지원을 통해 독립운동 정신 계승에 앞장서고 있으며, 승병일 애국지사의 건강은 자생의료재단 신준식 명예이사장이 보살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