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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의료재단은 독립유공자 유족 의료 지원을 통해 독립운동 정신 계승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사회공헌 독립유공자 유족 지원 유족과의 만남

독립유공자 유족지원

한족회 중앙위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건선생의 손부 윤영자님

등록일
2019.09.26
조회수
637

배고픔의 고통보다 큰 건.. 나라를 잃는 고통이다. 시할아버지, 시아버지의 독립운동 정신으로 살아왔습니다. - 자생의료재단
 

박건 독립운동가의 손부인 윤영자어머니는 독립운동을 하는 집안에 시집와 50평생을 독립운동정신으로 살아왔다고 합니다.
그 독립운동 정신은 바로 “배고픔의 고통보다 나라를 잃는 고통이 더 크다” 였습니다.

 

독립운동가 박건선생은 일제강점기 한족회 중앙위원으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셨습니다.
1913년 10월 만주 통화현 김두하락에서 독립운동단체 경학사의 후신인 부민단을 발전시켰습니다. 

1920년 5월 경 박건선생은 독립운동 하다 일본경찰에 붙잡혀 사형이 확정되기도 했지만 형장으로 압송 도중, 독립운동가 김자선과 동생 박세진, 박명진 등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얼마 뒤 독립운동을 하다 숨을 거두셨습니다. 

 

박건선생의 묘 - 자생의료재단 

 

시아버지 박진수님 역시, 아버지인 박건선생을 따라 독립운동을 했지만 일본군에 의해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더 억울한 건 독립운동을 했다는 집안의 후손 이라는 이유로 직업도 얻을 수 없었던 남편이었는데요. 윤영자어머니가 남편을 대신해 한 집안의 가장으로 지금까지 평생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독립운동 정신으로 살다 보니 제 인생에도 이런 행복한 순간이 오네요…”

 

진료받는 모습 - 자생의료재단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을 때 삶을 놓아버리고 싶었던 순간도 여러 번이셨다는 윤영자 어머님… 힘들 때 마다 자신을 일으켜 세운 건 바로 ‘독립운동 정신으로 살자!’ 라는 깊은 다짐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악물고 버티며 평생을 살다보니 윤영자 할머니의 몸 상태는 허리를 펼 수 없을정도로 통증에 시달리셨고 허리는 ‘ㄱ’ 자로 굽은 상태였는데요. 집 근처 병원에서 허리 치료을 받을 때 마다 늘 수술 권유를 받곤 했지만 수술 할 정도의 경제적 여유도 없었고 통증 역시 생활의 일 부분이다 라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목동자생한방병원 병원장 정벌(왼쪽), 윤영자 어머니(오른쪽) - 자생의료재단

고통스럽게 통증을 참아온 지금 윤영자 어머니는 목동 자생한방병원에서 3개월 간 약침과 침 치료를 받고 있으며 틀어진 골반을 바로 잡는 추나요법과 함께 한약치료가 병행됐습니다. 


자생의료재단의 독립유공자유족지원을 통해 3개월간 척추관협착증 치료를 받게 된 것이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시할아버지 박건 선생님의 마지막 선물과도 같다고 합니다. 

 

자생의료재단

독립운동가 박건 (1880년~1943년) - 운동계열 : 임시정부 / - 포상정보 :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 추서 / - 공적개요 : 상해 임정의 국내조사원으로 경북 의성지방에서 조사활동을 하였으며 재만독립촉성회를 결성하는데 북만대표로 활동함 / 자생의료재단·자생한방병원은 독립유공자와 유족 의료지원을 통해 독립운동 정신 계승에 앞장서고 있으며, 독립운동가 박건 선생의 손부 윤영자님의 건강은 목동자생한방병원 정벌 병원장님이 보살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