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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의료재단은 국가유공자 보훈 사업을 통해 독립운동 정신 계승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사회공헌 국가유공자 보훈 사업 유족과의 만남

독립유공자 유족지원

청산리대첩의 숨은 영웅, 나비장군 나중소 장군 손녀 나영자님

등록일
2019.07.19
조회수
2,600
독립운동을 한 집안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직업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명예와 미덕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나중소 선생의 손녀인 나영자 할머니의 어린시절의 기억은 늘 눈물이 마를날이 없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현상수배범으로 일본군에게 찍히는 바람에.. 매일 집을 찾아와 부모님과 가족들을 괴롭혔다는데요. 마음고생과 몸 고생을 한 탓에 아버지는 병을 얻어 일찍 돌아가셨고… 장녀인 나영자 할머니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직 먹고 살기 위해 여자의 몸으로 힘든 일까지 다 떠안고 살았다는데요.

 

“내 비록, 먹지도 입지도 못하더라도 끝까지 싸워 빼앗긴 내 조국을 찾겠소!”

 

나비장군이라 불린 나중소 선생은 1907년 정미7조약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만주로 망명해 군인 양성소 사령관으로 활동했습니다. 1920년에는 김좌진장군과 함께 청산리 전투를 우승으로 이끈 숨은 영웅이었지만 해방전 현상수배범으로 낙인이 찍혀 도망자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독립운동은 놓을 수가 없기에.. 승려로 위장한 채 가족들과 연락을 끊고 숨을 거둔 그 순간까지 독립운동을 하며 살아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애국지사 나중소의 묘

 

"독립운동 정신으로 살다보니… 내 평생 가장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나영자님의 허리치료를 하고 있는 목동 정벌 병원장

 

비록, 사는게 힘들고 눈앞이 깜깜할 정도로 앞이 보이지 않아도 나중소 할아버지가 평생을 독립운동 한 것 처럼 독립운동 정신으로 평생을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며 사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평생을 살다보니 나영자 할머니의 몸 상태는 연골이 다 닳은 무릎과 휘어져 굽은 허리…치료가 시급했습니다.

 

나영자님의 몸 상태는 허리, 목, 무릎까지 이미 퇴행화가 많이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3개월 간 약침과 침 치료로 굳은 허리근육과 염증을 풀어주고 틀어진 골반을 바로 잡는 추나요법과 함께 한약치료가 병행됐습니다.

 



목동자생한방병원 정벌 병원장 SAY 


자생한방병원에 근무하면서 독립유공자 유가족 분들을 치료하기는 처음이고 뜻 깊고 보람됩니다.

나영자님이 늘 하시던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본인보다 더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다른 독립유공자 가족들이 치료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독립유공자 유가족답게 모든 생각에 희생정신이 깃들어 있어 저 역시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긍휼지심을 발휘해 나영자님의 허리와 목 무릎의 상태가 나빠지지 않도록 치료하겠습니다.

 


 

 

나중소 장군 손녀 나영자님과 정벌 병원장 모습

 

자생의료재단

독립운동가 나중소(1867~1928) 운동계열 : 만주방면 포상정보 :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공적개요 : - 1919년 10월 서일. 김좌진 등과 대한군정서 조직 - 1920년 2월 ㅐ한군정서 사관연성소 교수부장으로 활동 - 1920년 9월 사관연성소 졸업생으로 구성된 교성대 대장 역임 - 1920년 10월 백운평전투와 천수평전투에 참전하여 청산리대첩에서 일본군 격파 - 1925년 3월 신민부 참모부위원장 겸 검사위원 / 자생의료재단ㆍ자생한방병원은 독립유공자와 유족 의료 지원을 통해 독립운동 정신 계승에 앞장서고 있으며, 독립운동가 나중소 선생의 손녀 나영자님의 건강은 목동자생한방병원 정벌 병원장님이 보살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