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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의료재단은 국가유공자 보훈 사업을 통해 독립운동 정신 계승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사회공헌 국가유공자 보훈 사업 유족과의 만남

독립유공자 유족지원

조국을 위해 몸 던진 독립유공자 이정득 선생의 아내 백영식님

등록일
2019.07.22
조회수
2,379
당연히 가야만 했다” 조국 위해 몸 던진 독립유공자 이정득
 

전북 완주에 살던 26살 청년 이정득은 일제의 핍박을 보다 못해 중국으로 건너가 광복군에 입대, 해방 되던 날까지 활동하셨습니다. 광복군 시기에 대해 물어보면 ‘당연한 가야만 했다’ 이라시며 말을 아끼시던 당신. 그래도 단 하나, 그 시절 군가를 부르시길 누구보다 좋아하셨다고 해요.

 

 

독립유공자 이정득 모습

  

광복 이후, 꿈에도 그리던 우리나라로 돌아왔지만 이정득 선생님의 생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6.25 전쟁이 터지면서 친일인물들이 정부 요직을 차지하는 등 일제의 잔재가 청산이 안된 상황에서 광복군 활동을 했다고 밝히면 불이익을 받게 되지는 않을지 두려웠던 것이지요. 그래서 광복군으로 복무하던 시절의 군복, 소지품, 증서, 사진들을 전부 태워버리셨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독립운동 했다고 하면 감옥으로 끌려간다는 소문이 돌면서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고 해요. 기록이 사라져 선생님의 공훈을 모두 밝히지 못해 아쉽습니다.

 

이정득 선생님 사진을 들고 있는 백영식 할머님
 

이정득 선생님의 아내 백영식 할머님은 어려운 삶에 보탬이 되고자 행상을 이고 다니면서 장사를 했습니다. 그마저도 상황이 좋지 않아 6명의 가족은 겨우 국수를 삶아 간장 종지에 찍어먹으며 근근이 사셨다고 하네요. 자녀분들도 돈이 없어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유공자 가족으로서 예우와 지원이 된 것은 최근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백영식 할머님은 지금이라도 독립유공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예우와 지원이 늘어나는 것이 반갑지만, 그보다도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영웅들의 희생을 잊지 말아달라 당부하셨습니다.

 

“친일파 청산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 안타까워요.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젊은 사람들이 알아줘야 되는데 다들 여유가 없어서… 역사에 좀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해요.”

 

“우리 영감, 주님 앞에 가서 억울한 거 다 (푸세요). 후손들이 역사공부를 많이 해서 원도 한도 없이 당신 생각해도 못 산 거 나도 한이 되는데 그거 다 보상해주고 그리 할거요. 걱정 말고 당신도 하늘나라에서 우리 후손들 건강하고 오래 잘 살 수 있도록 기도하세요.”

 

태어나시고 처음 한방 치료를 받으셨다는 백영식 할머니. 아파서 진지도 잘 못 드셨었는데 이제는 식사도 잘 하시고 요즘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닌다고 하시네요. 

  

진료받는 모습
  


부천자생한방병원 정재중 의무원장 SAY  


“저도 10년 넘게 자생한방병원에 있으면서 환자분들을 많이 맞아 보지만 독립유공자 가족 분을 치료하기는 처음이고 뜻 깊고 보람됩니다.

저도 한의학 배워서 이렇게 또 제가 국가에 기여를 하는 느낌이 들고 참 감사 드립니다.”

 


 

자생의료재단

이정득(1918~1995) 운동계열 : 광복군 포상정보 :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 수여 공적개요 : 1944년 4월 15일 광복군 제1지대에 입대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실이 확인됨. / 자생의료재단ㆍ자생한방병원은 독립유공자와 유족 의료 지원을 통해 독립운동 정신 계승에 앞장서고 있으며, 독립유공자 백영식님의 건강은 부천자생한방병원 정재중 원장님이 보살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