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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의료재단은 독립유공자 유족 의료 지원을 통해 독립운동 정신 계승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사회공헌 독립유공자 유족 지원 유족과의 만남

독립유공자 유족지원

마지막 순간까지 조국을 생각했던 독립운동가 우억만 선생의 증손자 우용준님

등록일
2019.08.29
조회수
714

독립운동 정신이란 우리 민족의 얼을 나타내는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는 정신 - 자생의료재단
 

 "일본 놈들 가만히 놔두면 안 되지" 마지막 순간까지 조국을 생각했던, 우억만 선생

 

경북 영덕읍의 유력인사 우억만 선생은 영덕에서 이름을 대면 모르는 이가 드물 정도로 인심이 후덕한 인물이었습니다. 형제 4명 가운데 맞이였던 그는 대구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일본경찰에 체포되고 맙니다.

 

"창수경찰관주재소 부근에 모여 있던 200명의 군중과 함께 한국독립만세를 연호하며 주재소에 난입하여 건물, 비품, 공문서를 파기, 훼손하였다. 징역 1년에 처한다." – 대구지방법원, 1919

 

독립운동 모습 - 자생의료재단
  

옥고를 치르고 나오니 요주의 인물에 올라 칼을 찬 일본 순사가 매일 몇 번씩 집을 배회하며 시비를 거는 게 일상이 돼버린 상황. 더 이상 한국에서는 독립운동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우억만 선생은 가문의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독립운동을 위해 온 가족을 데리고 중국으로 긴 여정을 떠나게 됩니다.

 

이후 어찌나 철저히 신분을 숨기고 활동을 했는지 몇 개월에 한번 집에 돌아오면 가족도 쉽게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고 합니다. 비밀이 누설될까 가족들에게도 말을 아끼면서도 "일본 놈들 가만히 놔두면 안되지"라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하셨다고 해요.

 

우억만 선생의 증손자 우용준님은 할머니로부터 증조부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자랐습니다.

 

"한국이 우리의 고향이라는 절절한 마음은 계속 있었거든요. 증조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실 적에도 꼭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해요. '재산도 없고 땅도 없는데 뭐 하러 가냐'고 물으니 핍박에 쫓겨왔지만 선조들이 살던 고향으로 가야 한다고…"

 

우용준님은 연변대학에서 공부하면서 그곳 교수님들과 함께 증조부의 족적을 찾아 다니셨다고 해요. 호적을 따라 다니며 먼지투성이 자료들을 뒤져봤지만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증조할아버지께서 사용하셨던 가명들뿐이었다고 합니다. 우억만 선생의 주요 활동 지역은 간도특설대가 악명을 높이던 연변 일대였습니다. 독립유공자 심사를 담당하던 보훈처 직원도 중국에서 치열한 독립활동을 하신 게 확실해 보이나 워낙 비밀스레 활동해 증명할 사료가 없어 안타깝다고 전할 정도였습니다.

 

우용준님은 우억만 선생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후 2003년 중국에 있는 증조부의 유해를 한국으로 모셔오게 됩니다. 우억만 선생이 조국을 떠난 지 70여년 만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직장을 다니며 남부럽지 않게 살던 우용준님은 증조부와 함께 한국행을 결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증손이기에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독립유공자 관련법이 2013년도에 개정됐지만 얼마 간의 포상금이 전부였죠. 결국 건설현장을 전전하게 되고 아내 분은 식당일을 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한국 생활이 무엇보다 힘들었던 점은 그가 중국어 억양으로 말할 때마다 타인들로부터 받아야 했던 차디찬 모멸감이었습니다. 증조부가 이런 결과를 위해 피 흘리고 싸웠는가. 중국으로 돌아갈까.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그럴 때마다 우용준님을 버티게 해준 것은 뿌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던 증조부의 유지였습니다. 

 

자생의료재단 

우억만 (1879~1942) - 운동계열 : 3.1운동 - 포상정보 :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 표창) 추서 - 공적개요 : 1919.3.19 경북 영덕군 창수면에서 주민 200여명과 독립만세 시위를 주동하고 경찰 주재소를 엄습하여 시설물을 파손하며 활동하다 피체되어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른 사실이 확인됨. / 자생의료재단·자생한방병원은 독립유공자와 유족 의료지원을 통해 독립운동 정신 계승에 앞장서고 있으며, 독립유공자유족회에 기탁한 "신준식 생계비" 지원을 통해 조금이나마 고충을 덜어드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