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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의료재단은 국가유공자 보훈 사업을 통해 독립운동 정신 계승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사회공헌 국가유공자 보훈 사업 유족과의 만남

독립유공자 유족지원

의열단의 숨은 영웅 신철휴의 막내아들 신홍우님의 이야기

등록일
2019.11.06
조회수
3,093

제 아버지는 의열단 소속의 숨은 영웅 신철휴 선생입니다.

 

“조국의 앞길을 막는자.. 내가 암살하겠다!”

 

독립운동가 신철휴선생은 1919년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길림성에서 김원봉ㆍ곽경ㆍ양건호ㆍ서상락ㆍ한봉근ㆍ김옥ㆍ이성우ㆍ윤소룡 등과 의열단을 결성했습니다. 의열단의 주 근거지는 베이징이었고 외교 선전이나 만세 시위 같은 평화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조선총독부를 비롯하여 동양척식주식회사, 식산은행, 재판소, 경찰서 또는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사 등 일제의 주요 기관을 폭파하고 관련 인사 등을 암살하며 일본 기관에 투쟁하는 독립운동활동을 전개 했습니다.

  

신철휴 선생 유묵 – 국태민안(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살기가 평안함)

  

이렇게 일본의 두려움의 대상인 의열단에서 신철휴 선생은 1920년 초에 밀양에서 폭파 거사 활동을 벌이던 중 사전에 일경에게 발각되어 뜻을 이루지 못한 채 1920년 3월 24세 나이로 검거됩니다. 종로경찰서에서 200일간 심한 고문을 받고 1921년 6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 받게 되는데요. 잔인하고 심한 고문을 받았을 당시에도 의열단 조직원들을 위해 끝까지 항거하셨다고 합니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계절이 바뀔때마다 늘 손끝 입끝 발끝에 늘 핏방울이 맺혀 평생을 통증에 시달리셨다고 합니다.

  

생전 신철휴 선생 모습

  

이처럼 자신의 몸을 받쳐가며 독립운동을 한 죄 밖 없는데…..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이웃들 조차도 일본의 타깃이 될까 늘 자신의 가족들을 피해 다녔다는데요. 이렇다보니 가난과 외로움은 생활에 일부가 되버렸다고 합니다. 독립 후에도 신철휴 선생은 ‘나는 나라를 위해 한 것이 없다’ 하시며 외부지원을 사양하셨다고 합니다. 그런 아버지를 원망도 많이 했지만 세월이 지나서야 아버지의 숨겨진 독립운동 활동을 알게되며 아버지를 이해하고 존경하게 됐다고 합니다.

  

진료받는 모습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평생을 집안의 생계를 돕기 위해 어릴 때부터 안 해본 일이 없다는 신홍우님! 그렇다 보니 신홍우님의 몸 상태는 ‘척추관협착증’ 치료가 시급했습니다. 3개월 간 약침과 침 치료로 굳은 허리근육과 염증을 풀어주고 틀어진 골반을 바로 잡는 추나요법과 함께 한약치료가 3개월 간 진행됐습니다.

 

자생의료재단의 독립유공자유족지원을 통해 감사하다는 말을 여러 번 표하신 신홍우님..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은 아버지인 신철휴선생의 독립운동 정신을 이어받아 친일 잔재 청산과 함께 남북평화통일 운동에 앞장서서 훌륭한 국가를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다고합니다.

  

신홍우님과 신민식 병원장 모습

   

자생의료재단

독립운동가 신철휴 (1898~1980) / 운동계열 : 의열투장 / 포상정보 :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 추서 / 공적개요 : 1919년 11월 길림성 파호문시에서 의열단 결성에 참여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20년 6월에 곽재기 등 동지와 같이 체포되어 1921년 5월에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징역7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함. / 자생의료재단∙자생한방병원은 독립유공자와 유족 의료 지원을 통해 독립운동 정신 계승에 앞장서고 있으며, 독립운동가 신철휴님의 아들인 신홍우님의 건강은 잠실자생한방병원 신민식 병원장님이 보살피고 있습니다.